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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17. 17世 〉7. <부정공>정부(正溥)配 유인여흥민씨행록발(孺人驪興閔氏行錄跋)
1. 문헌 목록 〉17. 17世 〉9. <부정공>미광공휘현하유사(嵋狂公諱顯夏遺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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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부정공>성균생원공휘숭하묘표(成均生員公諱崇夏墓表)
成均生員公諱崇夏墓表 懿陵辛壬之際宵人用事邦誣大起國是未定禍機煽動有志之士皆縮首屛跡嵁岩以終其身故成均生員趙公其一也公自幼好學及長遊鰲川韓公百愈之門得聞古人爲己之學沉潜硏究深造其奧築一書堂於順天大龜山中抱墳策獨玩樂恬然若將終身焉自甲辰嗣服後以親命黽勉赴擧中司馬遊太學時論推公爲掌議其經明行修爲儕流所許與焉公諱崇夏字尙仲玉川人高麗檢校大將軍諱璋其上祖也歷世軒冕不絶有諱瑜號虔谷官典農寺副正勝國屋社社門自靖朝家旌褒之士林爼豆之再傳諱智崙察訪與兄弟三人作亭共處扁以相好三傳諱大春號三灘與河西金文正公爲道義交三傳諱時聖號觀水亭以至孝聞三傳諱泰望遊晴少忠靖公金在魯之門以孝並蒙旌即公之禰也妣文化柳氏士人景昌其自出也生於肅廟戊寅四月三日歿于 英廟己巳六月六日葬于所居之大龜洞負乾原配全義李氏光全其父也葬用魯人禮盖公天分甚異孝友篤至居喪送終一遵家禮公之弟器夏自公歿後痛若割半如不欲生焉跡公之至幸淳美學文之力亦不可誣也有男女七人曰胤淳以李被道剡聖淳過房應淳亦以行誼聞男也曰柳德壎朴采東姜啓彬李可學女婿也重根弘根景根胤薰出也邦根以聖淳之子入爲應淳后曾玄以下不盡錄公之後孫學洙踵門而謂余曰吾祖事行多有可述者而不幸中年遺文爲六丁下收現存無幾今掇拾其斷爛之餘以爲狀請得長者一言歸刻貞珉顧余老朽病廢杜門閣筆硯不敢任人文字以是累辭不獲則姑述其大槩如此云 恩津 宋秉珣 撰 성균생원공휘숭하묘표(成均生員公諱崇夏墓表) 경종신임(景宗辛壬)의 즈음에 간사한 무리가 국사를 농간하니 나라에 무옥(誣獄)이 크게 일어나고 나라의 체제가 안정되지 못하여 화란(禍難)의 기미가 부추겨 움직이니 뜻있는 선비가 다 머리을 움추려 자취를 감추고 고상한 지조를 이로써 지켜 여생을 마치니 고(故) 성균 생원 조공(成均生員趙公)이 그 한 사람이다. 공은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오천한공백유(鰲千韓公百愈)의 문하에 유학하여 고인(古人)의 수기지학(修己之學)들 얻어 듣고 조용히 연구하여 깊히 그 오묘한 곳에 이르러 순천대구산중(順天大龜山中)에 서당(書堂)을 세우고 분책(墳策即古書)를 끼고 홀로 익히며 즐거워하여 고요히 장차 몸을 마칠 것같이 하였다. 갑진(一七二四)년에 영조(英廟)가 대위(大位)에 오른 뒤에 친명(親命)을 받고서 과장(科場)에 나가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태학에 들어가매 시론(時論)이 공을 추대하여 장의(掌議)가 되니 그 경서에 밝고 행의가 순독하여 동료들의 장혀(奘許)한 바 되었다. 공의 휘는 숭하(崇夏)요 자는 상중(尙仲)이요 옥천인인데 부정공 휘 유(副正公諱瑜)의 후예로 고의 휘는 태망(泰望)인데 청사 김충정공채노(晴使金忠靖公在魯)와 종유하고 효행으로써 정포(旌褒)를 받았고 비는 문화유씨사인경창의 녀(文化柳氏士人景昌之女)였다. 공이 숙종 무인(一六九六)年 四월三일에 출생하여 영조기사(一七四九)년 六월 六일 에 별세하니 거촌(居村)인 대구동부건원(大龜洞負乾原)에 안장하고 배는 전의이씨 광전의녀(全義李氏光全之女)로 묘소는 합부(合祔)하였다. 공이 천성이 기이(天性奇異)하고 효우가 순독하여 초상·장계에 주자가예(朱子家禮)를 준행하였고 그 아우 기하(器夏)가 공이 별세한 뒤에 자기 반체(半軆)를 베인 것 같이 애통하여 살고저 아니 하다가 공의 지극한 행의와 순실한 미덕을 이으니 학문의 온포(蘊抱)를 또한 가히 속일 수 없었다. 자녀는 남녀 七인을 두었는데 윤순(胤淳)은 효행으로써 도천(道薦)을 받았고 성순(聖淳)은 출계하였으며 응순(應淳)은 행의로써 영문이 있었고 유덕훈(柳德勳) 박채동(朴采東) 강계빈(姜啓彬) 이가학(李可學)이 녀서(女婿)요 손자 중군(重根) 홍근(弘根) 경근(景根)은 장방출이요 방근(邦根)은 성순의 아들로 응순의 후사가 되었으며 증현 이하는 다 기록치 아니한다. 공의 후손 학수(學洙)가 내게 와서 말하되, 우리 선조의 사행(事行)이 가히 기록할 만한 것이 많이 있었는데 불행히 중년에 화재로 인하여 산실(散失) 되어버리고 현재 가진것이 거의 없다. 이제 그 단란(斷爛)한 나머지를 주어 모아 행장을 만들어 왔으니 장자(長者)의 한말을 얻어가서 비석에 새겼으면 한다고 한다. 내가 늙고 병들어 문을 막고 필연(筆硯)을 치운지 오래므로 여러번 사절하다가 하는 수 없어 그 대강을 이와 같이 기술한다. 은진(恩津) 송병순(宋秉珣)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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